Nanoray

Za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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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음악 씬의 주 무대가 클럽과 프로듀서의 스튜디오라면 인터넷 변두리에선 작지만 꾸준히, 그리고 꽤 오랫동안 그들만의 리그가 열리고 있다. 그곳에선 인터넷 힙스터들만이 소비하는 음악들이 시시각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끔씩 그런 인터넷 전용 음악이 마치 베이퍼웨이브가 널리 흥했던 것처럼 수면 위로 나올 때가 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브레이크코어가 이런 경우에 속하는 것 같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 활발했던 브레이크코어씬이 어느 순간 활력을 잃어버리고 난 후 오래간만에 주목할 만한 작업물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Nanoray의 Zapper이다.

브레이크코어는 원래 우악스러울 정도로 과격한 브레이크를 앞세우는 장르이지만, 이 앨범은 브레이크의 음압이 그렇게까지 크진 않다. 대신 상당히 강하게 컴프레스된 베이스의 양감과 발랄한 신스가 이 앨범의 에너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브레이크도 음압이 작은 대신 한 곡 안에서라도 리듬의 변화를 주기적으로 가해 밋밋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런 리듬 변화에 맞춰 베이스나 신스 멜로디도 과감하게 바뀐다. 가끔씩 들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따온 듯 한 보이스샘플도 리듬감을 더하는 위치에 배치되어 듣는 재미를 더한다. 2000년대에 유행했던 브레이크코어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대신 나름의 방법론으로 브레이크코어라는 장르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앨범을 들어보면 프로듀싱은 결코 깔끔하지 않으며 오히려 일부러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마추어의 냄새가 진하게 난다. 강하게 컴프레스된 베이스는 전체적인 사운드가 뭉개지게 만들었으며, 사운드디자인 또한 현대 전자음악 씬의 양상과 다르게 투박하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던 자신 나름의 방법론이 오히려 이러한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게 만들었다. 즉 위의 단점들이 아티스트의 개성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인터넷 아티스트들은 고가의 장비를 갖춘 프로 아티스트들의 사운드디자인에 따라가기 힘들다(요즘은 예외가 많은 것 같긴 하지만…). 그러나 Nanoray와 같이 아마추어 냄새나는 사운드를 하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여지게끔 할 수는 있다. 구림과 개성은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이다. 어떠한 방법론을 차용하느냐에 따라서 구린 음악과 개성있는 음악의 차이가 결정 날 수 있다. 방구석 아티스트가 어떻게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 중 하나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앨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