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y My Dear
À dada
Released on

긍정적인 그라임즈의 평:
2022년 3월 15일, Ruby My Dear의 네번째 앨범 A dada가 출시되었다. 앨범이 출시되기에 몇 주 앞서, 수록곡의 스니펫을 토대로 만든 비주얼 트레일러가 아티스트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공유되었는데 이는 장르의 특성을 감안하면 꽤나 이례적인 시도로, 아무리 이름있는 아티스트라 하더라도 선공개곡 출시 이상의 홍보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기에, Ruby My Dear가 이제는 장르의 대표 주자격으로 대우받는 연차에 접어듦을 감안하더라도 어느정도 신선한 시도로 보여졌다. 또한 앨범이 발매된 레이블인 Blue Sub Records는 Ruby My Dear 본인이 설립한 인터넷 레이블로 레이블 안에 다른 아티스트는 전무하고 이 앨범이 해당 레이블에서 발매되는 첫번째 풀렝쓰 앨범임을 감안하면 이것이 사실상 인디 레이블도 거치지 않고 본인이 스스로 발매한 셀프릴리즈 앨범인 셈인데, 오히려 그렇기에 본인이 하고 싶었던 홍보과정을 마음대로 해보았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https://youtu.be/bUv4inUZvq8 생각해보면 Ruby My Dear와 이전부터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같은 프랑스 출신의 Igorrr도 저번 앨범 "Spirituality and Distortion"의 발매 이전에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메이킹 필름을 본인 유튜브에 먼저 공개하는 등 공격적인 앨범 홍보를 행한 바 있는데 특히나 이번 앨범에서 그 Igorrr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을 토대로 유추해보면 이러한 트레일러 또한 그의 영향을 다분히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 있었다. 채 2분이 되지 않는 트레일러 영상을 보고난 후, 앨범 내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음악의 짧은 부분만으로도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엔 충분했다. 영상은 일부러 홈메이드 저예산을 표방한듯한 아마추어리즘이 느껴진 담백한 비주얼이었지만 노래와 더불어 자막과 이미지만으로도 앨범의 개략적인 테마와 사운드를 짐작해볼 수 있는 훌륭한 트레일러였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티스트와 장르에서 기대할 수 있는 복잡하지만 원초적이고, 또 유아적인 저돌성과 위트도 모두 겸비한 그런 음악이 나오리라 사뭇 기대해볼 수 있었다.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아티스트 Ruby My Dear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이른 시기 Doc Colibri라는 활동명으로 2008년 인디 브레이크코어 레이블 Love Love Records에서 습작격의 음반을 내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프랑스 국적의 Julien Chastagnol은 영세한 브레이크코어 씬에서 나름대로의 입지를 구축한 거대 레이블이라 할 수 있는 Ad Noiseam과 계약하며 2012년 첫 정규 앨범 "Remains of Shapes to Come"을 발매하게 된다. 이 앨범이 언더그라운드 일렉씬의 대표 평론지 RA에서 5점 만점에 4.9점을 받고 비단 브레이크코어 매니악들 뿐만 아닌 리스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선전하는 등 브레이크코어라는 21세기에 저물어가는 장르의, 또 그중의 언더그라운드 레이블에서 남몰래 커리어를 시작한 아티스트 치고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위에 언급했듯 메탈과 실제 라이브 보컬을 결합한 음악으로 큰 인기를 끈 2010년대 브레이크코어씬의 대표주자 Igorrr와 잦은 콜라보와 교류를 하며 2014년엔 콜라보 EP "Maigre"를, 또 이전보다는 유명해지고 규모가 커진 Love Love Records에서 EP들을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다. 이후로도 보여주는 음악마다 단순히 브레이크코어와 IDM의 변종에 그치지 않고 Analogical Force나 Prspct와 같은 여러 인디 레이블과 계약하며 덥스텝과 에시드 드릴 앤 베이스와 같은 여러 음악색들을 자유자재로 혼합하는 시도를 통해 본인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내는 수년간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2018년, 전 트랙을 Igorrr가 마스터링하고 기타와 보컬을 녹음하는등 공동 작업한 3집 "Brame"이 출시되게 된다. 여기서부터 Ruby My Dear의 뚜렷한 색채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전까지 있었던 덥스텝과 애시드를 기반으로 한 다소 경직되어 있고 긴장감 넘치는 구조를 타파하고, Igorrr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이는 유머러스하고 위트 넘치는 음악색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본 앨범은 그것에서 더 나아가, 3집에서 유머러스해졌지만 여전히 무겁고 진중하게 느껴졌던 기괴함과 괴상함을 벗어던지고 가벼워진 톤은 아이들의 장난감과 목소리를 샘플링하는 것으로 구현되었다. "A dada" 라는 제목이 말하듯, 이것에서 다다이즘을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앨범 커버에 그려진 장난감 말, 즉 프랑스어 'dada' 자체를 말하는 것임이 더 적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트레일러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앨범은 어린 시절만이 갖고 있는 그 정서를 다분히 강렬하고 폭발적인 방식으로 환기하는 앨범이다. 첫번째 트랙 Ecureuil로 앨범이 시작되며, 리스너들은 이 앨범에서 무엇을 들을 수 있을지, 또 무엇을 들어야 할지를 이 아름답지만 격정적이고 양극단을 달리는 곡의 순간순간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곡의 처음은 아련하게 들리지만 결코 미약하진 않은, 어린이용 타악기를 연상시키는 멜로디로 시작되는데 이 멜로디가 곧 폭발적인 브레이크코어 리듬과 텍스쳐로 전개되며 순식간에 분위기를 형성한다. 또한 이 멜로디를 이어가는 바로크풍 하프시코드 라인과 보컬, 메탈 기타 리프는 전형적인 Igorrr의 양상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크레딧에 나와있진 않았지만 여기서부터 벌써 전 앨범의 후속편과 같은, Igorrr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내는 앨범이 될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또한 Ruby My Dear가 가지는 특장점인 최고 수준의 사운드 디자인과 리듬 프로그래밍이 더욱 노련해졌다는 느낌이 드는 트랙이었다. 이는 1번 트랙 뿐만 아니라 모든 트랙에서 공통점으로 드러나는 현상인데, 음악이 구조적으로 아주 복잡하고 귀로 감지하기 힘든 수준의 자잘한 쪼개기로 귀를 현혹시키는 것이 아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큰 단위로 작동하고 있지만 이것이 아주 날렵하고 제대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정말 세련된 느낌을 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분명 브레이크코어가 가지는 특색 중 하나는 일명 맥시멀리즘, 최대주의로, 모든 영역에서 최대 수준의 프로덕션과 프로그래밍을 통해 청자들을 교란시키는 것이 이상적인 브레이크코어 트랙의 특성이라고 생각했으나, 여기서는 정반대로 미니멀리즘이 주요한 특징이다. 물론 이 미니멀리즘은 통상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미니멀리즘과는 다른 것으로, 여기서 나타나는 리듬과 사운드는 여전히 화려하고 꽉 차 있지만, 그의 이전 작품들이나 다른 아티스트들의 역작들과 비교해봤을 때 이 앨범은 분명 미니멀한 느낌을 준다. 리듬과 패턴은 과하지 않고, 레이어도 모두 들리는 수준에 그치며, 구조도 이전 앨범에 비해서는 산만하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퇴화나 변화보다는 원숙해진 사운드이자, 장르가 나아가야할 변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으로 눈 여겨볼만한 트랙은 네번째 트랙, Beaucoup faire la cuisine이었다. 그의 작품에서 고의적으로 행간처럼 작용하는 인터루드 트랙들을 제외하고 가장 메인트랙이라 할 수 있는 트랙들 중에서, 이견의 여지 없이 가장 직설적이고 미니멀하다고 할 수 있는 구성과 사운드를 지니고 있다. 리듬도 전혀 복잡하지 않고, 멜로디나 구성도 처음부터 끝까지 청자친화적인 유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트랙이 대단한 이유는, 찬찬히 트랙을 들여다 보았을 때, 정말 효과적으로 짜여진 조각들로 큰 덩어리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곡의 1분 부근, 그 중에서도 드럼을 중점적으로 들어보면, 일견에는 복잡하지도 않고, 사람에 따라서는 꽤나 따분한 리듬 섹션이 지나간다고 간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뜯어보면, 패닝된 하이햇과 드럼, 그리고 브레이크 드럼이 각기 다른 위치에서 다른 리듬패턴을 변주하고 있는데, 이것들이 곡이 순식간에 전개됨에 따라 라이브 드러밍과 프로그래밍된 전자드럼 둘로 나뉘게 되며 각기 다른 역할을 지니게 된다. 전자는 하이햇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인터루드의 오버드라이브 기타와 함께 마치 메탈이나 하드락의 브레이크다운을 연상시키는 휴지(休止)를 만들어내고, 후자는 샘플링된 보컬과 함께 움직이며 마치 보컬 리듬의 일부분처럼 교묘하게 움직이다가 휴지가 찾아왔을때는 아무도 모르게 교묘하게 사라진다. 이 10초 남짓한 순간 사이의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고 또 너무나 독창적이어서, 수십번을 연속으로 반복해서 들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우연이나 순간적인 기재의 발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끊임없는, 또 뼈를 깎는 반복과 시도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이 앨범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명료하다. 정확히는, 그의 음악을 처음부터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명료하게 다가온다. 그는 2008년 Love Love Records에서 브레이크코어 음반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이미 원숙한 프로덕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2022년 정규 앨범 A dada를 내기까지, 발전하고 갈고 닦은 것은 비단 프로덕션 능력이 아닌 한 자세이자 음악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수없이 많은 변화, 또 브레이크코어라는 큰 틀에서 여러 레이블과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찾고, 지금에 와서는 이제는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장르의 해답을 찾고 여전히 그 음악을 놓지 않은,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태도이다. 저번 정규 앨범과 이번 정규 앨범을 통해 20년대 장르의 끝을 본인 음악의 새로운 시작으로 탈바꿈해낸 그가, 다음으로 변화시키고 찾아낼 다음 장르의 해답은 무엇일지, 또 내가 발견해낸 그의 해답은 앞으로 계속 지속될지 다음 작품과 행보가 언제나 기대되는 아티스트이다. 이번 앨범으로 그가 장르에 커다란 방점을 찍은 만큼, 20년대에 온 지금에서도 새로운 아티스트들이 그의 음악을 통해 장르의 새로운 활로를 찾고 관심을 가지기를 희망한다.